
냉동기 엔지니어가 -80℃의 온도를 생각하면 일단 압축기나 냉동기 사이클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단단 압축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2단 압축이나 캐스케이드를 떠올릴 것이고, 그 순간 머릿속에는 압축기 용량과 전력비가 같이 따라온다. -60℃, -80℃까지 내려가는 창고를 압축기만으로 돌리면 전기요금이 감당이 안 된다는 건 이 업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문제를 전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푼 곳이 있다. 바로 한국초저온이다. 이들이 쓰는 건 LNG가 원래 가지고 있는 차가움, 즉 냉열(冷熱) 이다. 이 칼럼에서는 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LNG의 기본부터 차례로 풀어보려 한다.
먼저 LNG부터. 음식을 만들다 가스가 떨어지면 LPG를 시켰던 그때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아직 더러 그런 곳이 있겠지만, 지금은 대부분 LNG를 쓴다. LNG는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집집마다 들어오는 천연가스다. 가스통을 주문할 일도, 가스가 떨어질 걱정도 없어졌다. 허나, LNG는 액화천연가스다. 산지에서 채굴한 천연가스를 부피를 약 600분의 1로 줄여 -162℃의 액체로 만든 것이다. 액체로 만들어야 배에 실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평택, 인천, 통영, 삼척, 제주 다섯 곳의 인수기지에서 LNG를 받아 저장한다. 문제는 가정이나 발전소에서 쓰는 LNG는 기체다. -162℃의 액체를 쓰려면 다시 기체로 데워야 한다. 그래서 인수기지에서는 LNG를 -162℃에서 0℃ 이상까지 올려(기화해서) 전국 배관망으로 보낸다. 이때 쓰는 대표적인 설비가 해수식 기화기(ORV)다. 바닷물을 뿌려서 바닷물이 가진 열로 LNG를 데우는 방식이다. 겨울철에 바닷물이 차가워지거나 수요가 몰려서 해수식만으로 부족하면, 천연가스를 태워 물을 가열하는 연소식 기화기(SCV)를 보조로 쓴다. 여기서 포인트가 하나 있다. LNG는 바닷물에서 열을 받아 데워진다. 뒤집어 말하면, 바닷물은 LNG에게 열을 빼앗겨 차가워진다. LNG 1kg이 기화할 때 내놓는 냉열은 약 200kcal, 전기로 환산하면 약 0.23kWh에 해당한다. 전국 인수기지에서 매일 엄청난 양의 LNG가 기화하는데, 이 냉열은 그동안 대부분 바다로 그냥 버려져 왔다.

버려지는 차가움 냉열은 온도대에 따라 쓸 수 있는 곳이 다르다. -162℃에서 0℃까지 올라오는 동안 구간별로 나눠 보면 이렇다. 가장 낮은 온도대: 공기액화분리나 분쇄 같은 산업 공정. 액체질소가 -196℃이니 이 근처 온도를 만드는 데 LNG 냉열이 유용하다. -100℃ ~ -50℃: 드라이아이스 제조나 초저온 물류 -50℃ ~ 0℃: 일반 냉동·냉장 물류 어떻게 보면 LNG 인수기지는 거대한 냉동기가 공짜로 돌아가고 있는 셈인데, 그 냉기를 쓰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한국초저온은 이 버려지는 냉열에 착안해서 창고를 만들었다.

평택센터의 설계 한국초저온은 2016년 11월에 착공해 2018년 12월에 준공한 평택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부지 약 9만 2천㎡, 연면적 약 15만 9천㎡ 규모이고, 구성은 이렇다. A동: 초저온·냉동 창고 B동: 냉동·냉장 창고 C동: 정온·상온 창고 초저온 구역은 -80℃에서 -60℃(SF급, -60℃ 이하)이고, 냉동 구역은 -25℃다. 참고로 이 창고는 흔히 말하는 -100℃ 창고가 아니다. 실제 운영 온도는 -80~-60℃대다.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있다. 평택센터는 LNG 인수기지에 배관으로 붙어 있지 않다. 평택 인수기지가 근처에 있기는 하지만 센터와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LNG를 탱크로리로 실어와서 센터 안의 95톤짜리 저장탱크 2기에 채우고, 그 자리에서 냉열을 쓴다. 냉열을 창고까지 옮기는 방식은 이렇다. LNG와 중간 냉매 사이에 판형 열교환기를 놓는다. LNG의 냉열로 중간 냉매를 차갑게 만든다. 중간 냉매로는 R407C를 액체 상태로 순환시킨다. 에너지신문(2022년)에 실린 전문가 기고에 소개된 운전 조건을 보면, LNG 냉열은 대략 -145℃에서 -87℃ 구간에서 취하고, 초저온 A동에는 -85℃에서 -62℃ 사이의 액체 냉매를, -25℃의 B동에는 -50℃에서 -40℃ 사이의 액체 냉매를 순환시키는 구조다. 압축기가 창고의 냉매를 직접 압축하는 일반 냉동 사이클과 달리, 이 냉열 루프에서는 압축기 없이 냉매를 차갑게 해서 돌린다. 그래서 압축 동력이 크게 줄어든다.

냉열을 뺏긴 가스도 버리지 않는다 냉열을 빼앗기고 기체가 된 천연가스도 그냥 두지 않는다. 재액화 설비(프랑스 크라이오스타 기술)로 다시 액체로 만들어 탱크로 돌려보낸다. 재액화하지 못한 가스는 440kW급 연료전지 22대, 약 9.68MW 규모의 발전설비에 연료로 투입한다. 연료전지에서 나오는 고온수는 흡수식 냉동기와 연계해 냉방, 난방, 급탕에 쓴다. 여기에 옥상의 438kWp 태양광과 심야전기를 저장하는 약 2.2MWh의 ESS까지 더해, 센터는 사실상 에너지 자립형으로 운영된다. 기술 파트너는 일본의 도쿄가스엔지니어링솔루션과 크라이오스타이고, 안정적인 LNG 수급을 위해 한국가스공사와 MOU도 맺고 있다.
엔지니어가 짚고 넘어갈 부분 이 시스템의 본질은 냉동 사이클의 고압측 열원을 전기가 아니라 LNG가 대신한다는 데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압축 과정 자체를 우회한다. 회사 측이 밝힌 수치로는 10톤의 제품을 동결하는 비용이 전기 방식 약 29만 4천 원, LNG 냉열 방식 약 5만 9천 원 수준이라고 한다. 회사 발표 수치이니 참고용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지만, 압축기 동력이 사라진다는 구조적 이점 자체는 분명하다. 다만 비판도 있다. 앞서 인용한 에너지신문 기고(윤상국 HKC 연구소장)는, 이 설계가 냉매의 상변화 잠열이 아니라 액체 현열만 이용하기 때문에 순환 냉매량이 지나치게 크고, 그래서 열교환기와 배관, 펌프가 모두 거대해진다고 지적한다. 같은 기고는 일본초저온의 방식은 잠열을 이용한다며 비교한다. 이 지적이 맞든 틀리든, 초저온 창고를 설계하는 사람이라면 냉매 선정과 순환 방식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초저온의 실익 초저온의 실익도 분명하다. -60℃급 급속동결은 최대빙결정생성대를 빠르게 통과시켜 얼음결정을 작게 만든다. 그래서 해동 후 드립이 적고 선도가 유지된다. 참치 같은 고급 수산물이나 백신 같은 의약품 보관이 이 온도대를 요구하는 이유다. 실제로 한국초저온은 2021년 코로나19 백신 보관을 맡은 바 있다.
인천신항에서는 배관으로 연결한다 한국초저온은 인천신항 배후단지에 두 번째 센터를 추진하고 있다. 이곳은 평택과 달리 한국가스공사 인천 인수기지와 파이프라인으로 직접 연결하는 설계다. 기지에서 LNG를 받아 냉열을 쓰고, 기화된 천연가스는 다시 기지로 돌려보내는 구조다. 탱크로리 수송이 필요 없어진다는 뜻이다. 다만 일정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원자잿값 상승과 자금 조달 문제 등으로 착공이 지연되어 왔고, 2026년 1월 보도 기준으로 2026년 하반기 착공, 2029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익성 보완을 위해 20MW급 데이터센터를 함께 짓는 변경안도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LNG 냉열로 데이터센터 냉각까지 노린다는 점에서 이후 방향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한국초저온의 초저온 창고는 새로운 냉동 원리를 발명한 것이 아니다. 바다에 버려지던 냉열을 열교환기와 중간 냉매로 창고 안까지 끌고 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압축기 없이 초저온을 유지하고, 남은 가스로 발전하고, 발전 폐열로 냉난방까지 해결하는 연쇄 구조다. 냉동기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씁쓸하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효율 좋은 압축기를 만들어도, 결국 압축기가 필요 없는 시스템과 경쟁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ㅎㅎ 우리가 모니터링하는 저온 창고의 온도를 누가, 무엇으로 만들고 있는지 이해하는 일은 결국 우리 일의 가치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